함께라 가능했던 시간들

문화수도

FOCUS

문화수도는 사진 찍는 김진솔, 음악과 영상을 하는 정문기, SNS에 만화를 그리고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기도 하는 정재윤과 김민주가 함께 쓰는 작업실이다. 처음 이 곳은 각자 필요에 의해 만나 별다른 계획없이 시작하게 된 공간이었지만, 김춘수 시인의 시 ‘꽃’처럼 공간에 이름을 붙이니 특별한 곳이 되었다. 이제 곧 사라질 공간이지만, 함께하면서 얻은 것들과 그 과정에 대해 김진솔(이하 진)과 정문기(이하 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진 : “원래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해야겠다고 기획을 하고 만든 공간은 아니었어요. 저는 학교 실기실을 쓰고 있었는데 졸업과 동시에 실기실을 빼야하는 시점은 다가왔고, 2월 말이 되면서 새로운 작업실은 필요할 것 같은데 혼자 2년 계약해서 공간을 짊어지고 가기엔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던 참에 마침 문기씨도 스피커를 놓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해서 서로의 필요 때문에 함께하게 되었죠. 처음에는 홍대 근방을 알아봤었어요. 한 일주일 정도 홍대, 상수, 합정동, 연남동을 돌아다니다가 여기보다 조금 더 나가면 괜찮은 매물이 있을 것 같아서 나가봤는데 역시 재개발지역이라 그런지 가격이 확 차이가 나더라고요. 여기가 가격에 비해 공간도 크고 작업실로 쓰기에 공간의 멋이 있어서 여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두 명이 먼저 계약을 해서 방 하나씩을 쓰기로 했고, 방 하나가 남는 건 그냥 두기 아까우니 세를 줬죠. 나머지 방은 넓지 않아서 만화나 그림 그리는, 테이블 하나만 놓으면 되는 친구가 들어오면 될 것 같아서 재윤씨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 친구가 또 혼자 쓰기는 좀 그렇다고 해서 친구 한 명 더 불러서 민주씨까지 총 네 명이 쓰고 있습니다.”처음엔 그렇게 필요때문에 어쩌다 만나서 장난처럼 시작했다.문 : “힘을 주고 만든 장소는 아니었어요. 이름도 고민해서 지은 것도 아니었고. 아무래도 모래내가 가지고 있는 동네의 분위기가 있다보니 거기에 맞춰 이름도 재미로 지은 것이었어요. 주변에 방석집이 많아서 화수분같은 방석집 느낌나는 이름으로 지어볼까 하다가, 저희 둘이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도지사가 나와서 지역광고 하고 그런걸 본거에요. 그런 광고엔 꼭 ㅇㅇ의 수도 어디로 오세요. 이런 문구가 붙잖아요. 그래서 장난으로 문화수도 어때? 했는데 그나마 후보 중에 그게 제일 무난하고 괜찮아서 문화수도로 짓게 되었어요. 사실 청담동에 있는 스튜디오 같은 곳이랑 비교하면 여긴 동네도 그렇고 초라하니까 일부러 돌려까는 개그 느낌으로 과장되게 지어본거였죠.” 진 : “처음에는 친구들이 별 일이 없어도 모여도 되는, 살롱같은 분위기로 만들고 싶었어요. 원래 꾸미고 싶은게 많았었는데 막상 하려니 우리가 예산이 있는게 아니었어서 결국 한 것은 카펫깔기 정도였던 것 같네요. 나머지는 마음먹고 꾸민게 아니라 촬영하고 남은 소품을 가져와서 놓거나, 공간이 빈티지한 느낌이 있으니 그 느낌을 살리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 같아요. 거실에 있는 플레이보이 판넬도 당구장 폐업하고 나온 쓰레기에서 주워온거에요. 그런 식으로 이 공간에 맞는 방식으로 조금씩 맞춰 온 것 같네요.평범하게 작업공간을 나눠쓰는 것 뿐이었지만, 그곳에 이름을 붙이고 함께하면서 점점 더 특별해졌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진 : “처음 시작했을땐 파티도 하고, 인스타 계정도 하나 따로 만들어서 관리하다보니까 렌탈 스튜디오 같은 곳으로 생각했던 분들도 계셨던 것 같아요. 장소 섭외 문의도 몇번 왔었고. 지금은 주기적으로 이벤트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바쁘지 않을때는 캐피탈 시어터라는 영화 상영회를 비정기적으로 해요. 영화를 선정해서 인스타로 신청자를 받고, 같이 프로젝터로 영화를 본 뒤 맥주 한잔 가볍게 하면서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아니면 프리오픈이라고 비정기적으로 인물사진촬영을 하는게 있는데요. 개인작업으로 반쯤은 놀면서 연구용도로 해보는 작업이에요. 프리랜서로 혼자 일하다보니까 일을 만들어서라도 이런 경험을 하는게 저한테 좋기도 하고 필요한 것 같더라고요. 단순히 친구들 만나서 술마시거나 하는게 아니라 영화를 같이 보고 이야기를 한다거나, 워크샵을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문 : “일단 처음에 함께 스튜디오를 차린게 아니라 따로 하되 공간을 함께 쓰자고 한 것 이었는데, 그 공간에 이름을 붙였던 것이 되게 주요했던 것 같아요. 그냥 작업실이라고 했으면 딱히 사람들이 인식을 못했을 것 같은데 작업실에 이름을 붙여놓고 나니까 라벨이 하나 더 붙은거에요. 그러다보니 저는 계속 학교에 있어도 다들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나보다라고 생각해주시기도 하고. 그것 덕에 일을 받기도 하고 사업자를 내기도 했었고요. 그런게 함께 모여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진 : “서로 시간이 안되면 해줄 수 있는 것들을 대신 해주기도 하고. 누군가 일을 받아오면 서로 소개해주고 같이 하기도 하고. 어쨌든 일종의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나이도 다 비슷하고 하니 정보 공유가 되게 빠르고.”분야가 다른 넷이 함께 모여서 서로 무슨 도움이 될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분야가 다르기에 적절한 거리감을 사이에 두면서 동료가 될 수 있었다.문 : “제가 외주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한 회사에서 브랜딩 작업을 하는 일이었는데 사진이랑 영상이 필요한 일이었어요. 그럴때 저는 당연히 옆방에 사진 잘 찍는 친구가 있으니까 이 친구랑 같이 해야지 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고, 멀리서 찾지 않아도 옆에 있으니까요. 분야가 다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안겹치니까 일종의 상가처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진 : “독립출판 같은 경우엔 보통 sns상에서 홍보가 되잖아요. 책내거나 활동 홍보할때 이렇게 네 명밖에 안되지만, 만들자마자 네 명이 동시에 sns에 올려서 홍보를 하는게 생각보다 효과가 크더라고요. 동인이 만들어지는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확실히 혼자 뭐 할때보다 함께하니 효과가 더 큰 느낌이 확실히 들고. 독립출판 입고할때도 어느 서점은 잘 팔리고 어느 서점은 정산을 잘 안해준다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특별히 묻지 않아도 들을 수 있으니까 좋고요.” 이제 곧 있으면 문화수도는 사라진다. 각자 함께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이제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흩어지기로 한 것이다. 이제 문화수도라는 공간은 사라지지만, 그 이름 아래서 함께 발전해왔던 시간들과 끈끈해진 인연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문 : “일적으로도 서로 합쳐서 잘되는 것보다는 이제 개개인이 잘되는 것도 중요하니까. 졸업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요. 처음 이 곳에 들어왔을때 생각해보면 정말 일취월장 한 것 같아요. 그때는 갓 졸업한 상태였으니까 아무것도 장담이 안되는 상황이었고. 그래도 이젠 누군가는 책 계약도 하고, 취업도 하고, 다 잘된 것 같아요. 여전히 1,2년 후에 대해 생각하면 불안한 면도 있겠지만 그간 함께하면서 자신감도 얻었고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원래 하고싶은 일과 전공이 달라서 진로에 대해 갈팡질팡한 면이 있었거든요. 매번 절충안을 찾아서 전공도 살리면서 돈도 버는 방향으로 움직였었는데 옆에 있는 친구들이 자기 분야를 하나 가지고 가면서 잘 발전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니까 저도 자극을 받아서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진솔 같은 경우엔 개인작업이든 상업작업이든 사진으로 시작해서 계속 그 쪽으로 쭉 밀고가고 있고, 재윤도 자기 분야에서 어느정도 알려지고 있고. 각자 다들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여 온 것 같네요.”진 : “사실 굳이 작업실 하려면 큰 원룸 구해서 하도 되는건데, 일하다가도 조금 지루해지면 거실로 나가거나 옆 방이라도 가면 기분이 환기되고 하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작업공간도 공유할 수 있는 곳으로 구할 것 같아요. 저같이 나름 창작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끔 다른 이야기도 듣는게 필요하더라고요. 개인 공간이 있으면서도 또 다같이 작당모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되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문 : “앞으로 이제 이 공간은 없어지더라도 결속은 계속 발전하는 중이니까. 앞으로도 쭉 해왔던 것처럼 협업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요. 이게 그렇게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모여서 어쩌다 이름을 짓고 함께 있다보니 서로 발전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고, 거기에 자극받아서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죠.”

COLOPHON
글, 사진
서울소셜스탠다드 김시내
자료제공
김진솔
환하게 비주류가 머무는 집

마포구 서교동 326-29

만듦새가 좋은 물건

마포구 서교동 330-3 3층

함께라 가능했던 시간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295-31

함께라 가능했던 시간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29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