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시원

고시원의 탄생과 진화

고시공간의 변천사

FOCUS

서울에서 교회의 십자가만큼 많이 보이는 것이 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비둘기와 치킨집, 그리고 고시원이라고 말할 것이다. 바보 같은 대답일 수 있지만 눈을 감으면 금새 익숙한 풍경들이 떠오른다. 하늘로 치솟은 빨간 십자가와 그 아래로 펼쳐지는 촌스러운 고시원 간판과 창문들, 1층 치킨집에는 치킨 뜯는 아이돌 포스터가 어지럽게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앞 가로수 밑에는 열심히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비둘기 무리가 악착같이 생존의 몸집을 하고 버틴다. 서울살이를 조금만 겪어 보면 알 수 있는 단편적이지만 익숙한 이미지. 엽서로 만들고 싶은 (하지만 아무도 사지 않을) 서울 풍경의 종합선물세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5년 8월 기준 대한민국에 준공된 고시원 동 수는 1,136동으로 전년도의 268동보다 4배 이상 급증했다. 그중에서도 61.8%인 703동이 서울에 새롭게 들어섰다. 또한 서울시가 2015년 2월에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의 주거빈곤 청년(만19세-34세)은 52만 3,869명으로 전체 청년 중 22.9%를 차지했고 대부분의 거주 공간은 고시원에 집중되어 있다.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전세난과 그에 따른 임대료 상승은 이를 더욱 부추겼다. 고시생보다 이젠 1인 가구의 피난처로 바뀌며 굴레처럼 씌워진 ‘고시’ 라는 단어의 이미지를 최대한 희석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여전히 고시원이라는 말이 통용되고 쉽게 이해된다. 그렇다면 고시생들은 모두 어디가고 주거빈곤층이 그들을 대신하게 되었을까. 탄생 이래 꾸준히 진화를 거듭했던 고시원의 변천을 통해 그 궁금증을 파헤쳐 보자. 고시원의 탄생고시원의 원형이 최초로 등장한 시기는 1970년 초반으로 추정된다. 서울 근교, 허름한 비닐하우스나 마을 시골집에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공부를 위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합격자가 50-60명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국가에서 뽑는 인원이 적었지만 고시원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으로는 충분하였다. 학생들은 대개 하숙의 형태로 생활했는데, 보통 무허가로 지어진 일자형 건물에 방이 늘어선 형태였다. 이때만 하더라도 고시원이라는 단어는 보편적이지 않았고 집의 특징을 딴 이름ㅡ예를 들어 외딴집, 돌담집, 개울 건너 집ㅡ으로 불리었다. 사람을 모아놓으면 어김없이 발생하는 서열 문제가 이곳에도 있었다. 예컨대 가장 오래 있었던 사람이 가장 좋은 방을 얻는 식이었다.ko1 copy(좌) 옛날 하숙집에서 밥을 먹는 모습, (우) ‘돼지막’ 이라고 불리었던 초기 무허가 하숙집이런 상황 속에서 합격점이 60점 이상의 절대점수제 시험이 법조계 인력의 확대를 위해 1970년 5월, 정원제로 변경되었다. 상대적으로 낮아진 난이도 덕분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기 시작했고 이는 작은 모임에 불과했던 곳이 큰 집단의 규모로 확대되는 계기가 된다. 사실 당시에는 산 속의 절에 들어가 방 한 칸에서 공부하는 고시문화도 보편적이었다. 이를 ‘고시사찰’ 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세속과 단절된 곳에서는 스터디 그룹을 만들거나 정보 교류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점차 사람들이 모이는 고시원에서 공부하는 문화로 바뀌어 간다. 고시제도 및 시험에 관한 정보 습득이 공간의 변화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1970년 후반에 들어서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전문적인 ‘고시원’이 탄생하였다.  그와 더불어 합숙촌, 고시연구실, 도서관, 사설학원 등 고시 준비가 가능한 다양한 공간들도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다.점점 전문화되는 고시원초기의 고시원들은 일반 2층 주택을 개조한 경우가 많았다. 1층에서는 주인 세대가 살고 윗 층에는 고시생들이 방을 하나씩 채우며 공부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내려와 밥을 먹었다. 당시 대부분은 식사를 제공하였는데 지금처럼 음식점이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기존 하숙집에서 공부하던 생활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 더 컸다. 고시생들에게는 유일한 낙이 먹는 것인 만큼 음식의 종류와 맛에 따라 고시원의 인기가 판가름 나기도 했다.Print(위) 주택을 이용한 고시원의 1층 평면도, (아래) 5개의 방과 공용부엌이 있는 2층 평면도고시생이 날로 늘어가면서 아예 고시원 운영을 목적으로 지은 전문 고시원도 출현하기 시작했다. 효율을 최 우선으로 추구하다보니 가운데 복도를 두고 양쪽으로 방들이 늘어서는 형태가 보편화 되었다. 공동으로 쓰는 화장실과 샤워실은 외부에 갖추어 놓았고 통상 반지하의 공간에 관리하는 주인이 기거하였다. 방해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보다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었는데, 점차 1인실이 보편화되었고 책상과 책장은 기본으로 제공되었다.많아지는 학생들의 수요에 맞추어 ‘법학원’ 이라는 고시 전문 학원들도 생겨난다. 사법고시도 점차 대학 수능처럼 소문난 강사와 학원, 동네의 트렌드에 영향을 받으며 유명한 곳에 고시생들이 대거 몰렸다. 초기에 학원들은 종로에 몰려 있었으나 서울대 등의 영향으로 신림동이 유명해지자 그곳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조금씩, 단단하게 밀집하면서 고시촌은 그 명성을 더욱 높여 갔다. 신림동이나 노량진 하면 바로 고시촌을 떠올리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이다.ko45(좌) 전문 고시원의 외부 모습, (우) 균등한 10개의 방으로 구성된 2층 평면도생존을 모색하는 고시원과열되던 고시원 열풍은 90년 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꺾이기 시작한다. 인터넷 강의가 발달하면서 굳이 오프라인 학원으로 갈 필요가 없어졌고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쾌적하고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욕구들도 확산되었다. 또한 2007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아예 고시원에 발을 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졌다. 물론 거센 반대 속에 사법고시 폐지가 종전 2017년에서 2020년으로 유예되긴 했지만 더 이상 사법고시만이 법조인이 되는 길이 아니게 된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점차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짙어지면서 모든 것을 같이 써야 하는 기존 고시원 공간을 멀리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가격보다는 편리성과 독립성이 우선시 되는 것이다. 그에 따라 방에 여러가지 시설들이 갖추어진 ‘원룸’ 형태의 공간들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고시원으로서는 엄청난 생존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었지만 호락호락하게 사라질 고시원은 아니었다. 변화된 사람들의 욕구와 트랜드를 반영한 고시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각 방마다 화장실이 들어선 유형을 만들고 건물의 규모를 키워 내성도 갖추었다. 또한 공기가 좋지 못하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방마다 음이온 발생기를 설치하거나 세련된 분위기 속에서 휴식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하에 카페와 같은 공간을 만든 곳도 생겨났다. 고시원은 아니지만 아예 저층 상가부에 학원을 유치하여 모든 생활이 건물 안에서 가능하도록 한 곳도 있었다.최근에 지어지고 있는 대형 고시원의 모습이처럼 고시원의 공간이 공부를 위한 곳일 뿐 아니라 일상 생활을 위한 곳으로도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고시생들의 빈자리를 일반 사람들이 점점 채워가기 시작하였다. 임차액이 원룸이나 오피스텔보다 훨씬 저렴할 뿐더러 관리비나 공과금도 없어 신경 쓸 부분이 없는 것도 장점이었다. 따라서 마땅한 선택지가 없는 주거 빈곤층이나 일시적으로 거주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고시원은 닥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고시촌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까지 급속도로 확장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서울 어디에서든지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되었다.이런 일련의 흐름을 통해 서울에 고시원(하지만 더이상 고시생은 없는)이 전염병처럼 퍼지게 되었다. 저렴한 주거공간을 필요로 한 사람은 많고 그 가장 쉬운 대안이 고시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고시원은 특정지역만의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그저 서울 어디에나 필요한 보편적인 주거공간일 뿐.하지만 서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법규가 보완되기도 하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것은 다행이지만 화재나 고독사, 외로움 등 기사에 종종 등장하는 고시원의 문제들은 항상 남아 있다. 특히 최소기준에 대한 규정이 엄밀하지 않다는 점도 생각해 보게 된다. 고시원은 무엇이든지 최소한의 것만을 갖춘 곳이기에 어떤 것이 조금만 미달이 되어도 사는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생긴다. 또한 상당수의 공간의 면적이 지나치게 협소하다. 높은 지가와 경제성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점차 생활의 공간으로 고시원이 쓰이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고시원의 진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영국(30㎡)의 기준처럼 럭셔리한 크기는 바랄 수 없지만 우리나라는 이웃 일본(16㎡)보다 작은 12.28㎡ 에 불과하다. 일본보다 우리나라의 평균 신장이 무려 4cm나 큰데도 말이다.앞선 통계처럼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젊은이들이 거쳐 가는 공간인 고시원. 이 공간을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중요하게 바라보면 어떨까. 그 공간적, 사회적 유형은 유지하더라도 조금씩 좋아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훨씬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어쩌면 이미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선하고 새로운 올-뉴 ‘고시원’ 을. – 본 저작물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2014년 작성하여 개방한 ‘신림동: 대학동, 청운의 꿈을 품은 사람들’ 중 일부를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서울역사박물관(http://library.museum.seoul.kr)에서 무료로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INFO
주소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COLOPHON
서울소셜스탠다드 석준기
사진
박진우, 서울소셜스탠다드 석준기
비공개: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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